성적표,주택 평수, 자동차 배기량 등 숫자로 줄세우기 좋아하는 요즘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자는 글
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11200300015
본문 중 발췌
아라비아숫자는 일종의 기호일 뿐이지만 사람들은 그 숫자 때문에 희망을 품기도 하고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라비아숫자가 할 수 없는 일도 많다. 사람의 품격이나 아름다움, 공감 능력, 책임감, 우정, 사랑 등을 계량화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던가.
이때의 두려움은 주입된 두려움이다. 두려움은 성찰을 방해하고 사람을 마비시켜 다른 삶을 상상하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세상이 만들어놓은 질서와 규율을 유쾌하게 위반해본 이들은 아라비아숫자가 지배하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있음을 자각한다. 의외로 쏠쏠하고 멋진 세상 말이다.
매튜 폭스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삶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사다리 오르기로서의 삶이다. 이런 삶을 선택한 이들은 늘 경쟁에 내몰린다. 오르려는 이들은 많고 기회는 적기 때문이다. 가끔은 앞선 이들을 끌어내리기도 하고 뒤따라오는 이들을 짓밟기도 한다. 승자와 패자가 갈리고, 적대감과 원망이 마치 공기처럼 주변을 떠돈다. 승자들은 많은 것을 누리며 자기들은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권력에 도취된 사람들은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이들을 모욕하고 멸시한다.
사다리 오르기로서의 삶과 구별되는 삶의 방식이 있다. 원무, 즉 둥근 꼴을 이루어 추는 춤으로서의 삶이다. 야수파 화가인 앙리 마티스의 ‘춤’을 떠올려보면 좋겠다. 초록색 대지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알몸의 여인들이 춤을 추고 있다. 색채는 강렬하고 구도는 단순하다. 선은 한껏 자유로워 여인들이 느끼는 기쁨과 에너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다섯 명의 여인들은 서로 손을 잡은 채 원을 이루고 있다. 원은 높낮이가 없다. 원무의 기쁨 속에 녹아든 이들은 저 바깥에서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이들을 자기들의 춤 속으로 기꺼이 맞아들인다. 함께 손을 잡는 순간 원은 더 커지고 기쁨 또한 증대된다. 분열된 세상에서 하나됨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확대된 욕망을 동력으로 삼는 소비사회에서 이런 삶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보이는 까닭은 우리가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자족하는 마음은 소비사회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저항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동료들과 발을 맞추지 않는다면 그는 아마도 다른 북소리를 듣고 있는 것일 거라고 말했다. 다른 북소리에 맞춰 걷는 사람들이야말로 질식할 듯한 현실에 틈을 만드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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